개발자를 만나다

아빠 그리고 개발자

타이니밥의 창립자를 만나다.

내 아이가 쓰는 거라 생각하며 만듭니다.”

교육 앱 개발자에게 종종 듣는 이야기입니다. 내 아이가 보고 듣고 만지며 노는 걸 생각하며 만든다니. 모든 정성을 쏟아부었겠다는 생각에 신뢰가 가죠. 오늘 소개할 개발사, 타이니밥(Tinybop) 또한 그렇습니다.

아이가 iPhone을 묘사한 것을 본 따, 훗날 〈무엇이든 가능한 기계〉라는 앱도 개발했습니다.

타이니밥의 창업자인 라울 구티에레스(Raul Gutierrez) 역시 두 아이의 아빠예요. 한국 음식 중에서도 밥을 가장 좋아하는 두 아들에게 ‘타이니밥’이라는 별명을 지어 준 그.

아이들이 스마트폰에 관심을 갖자, 타이니밥이라는 개발사를 세우고 직접 교육 앱을 만들기 시작했다는데요. 구티에레스의 말을 함께 들어 보죠.

교육용 앱을 만들겠다는 결심, 아들 덕분이라고요.
2011년, 그러니까 첫째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였어요. 생일 선물로 iPhone을 사달라더라고요. 난감했습니다. 아내와 저는 아이를 스마트폰에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엄청 애썼거든요.

왜 갖고 싶은지 일단 물어봤어요. 제법 침착하게 답하더군요. iPhone은 좋은 도구이자, 장난감이자, 이야기 상자, 즉 ‘무엇이든 가능한 기계’라고요.

개발 내내 전문 테스터인 아이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합니다.

그 무렵 저는 사업을 구상 중이었죠. 20년간 인문학과 IT 분야에서 일한 경력을 바탕으로 모바일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어요.

마침 아들과의 대화 덕분에 모바일 교육 콘텐츠가 필요한 시대임을 깨달았어요. 그 후로 아이가 iPhone을 갖고 노는 걸 유심히 관찰했죠. 애 말이 맞더라고요. 앱이 교육 도구로서 엄청난 잠재력을 가졌다고 생각했어요.

곧장 디지털 교육 콘텐츠에 관심이 있는 디자이너와 기술자를 모아 회사를 세웠습니다.

아이들도 타이니밥의 초기 멤버와 다름없다고 들었습니다.
저희의 테스터였으니까요. 앱의 어떤 점이 좋고, 별로인지 바로바로 알려 줬어요. 아이들의 학급 친구들도 참여하기 시작했죠. 우리에겐 소중한 전문 인력이었습니다. 물론 비용도 정식으로 지급했고요.

아이들이 끊임없이 질문하며 즐기도록. 개발자도 끊임없이 질문하며 만듭니다.

첫 번째 앱인 〈사람의 몸〉은 출시하고 한 달 만에 400만 건 이상 다운로드됐어요. 적극적으로 테스트하고 피드백을 준 아이들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시작부터 목표도 남달랐겠습니다.
첫 앱을 개발할 때부터 분명했어요. 끊임없이 질문하며 갖고 놀 수 있는 앱을 만들자는 것. 그리고 만드는 우리도 끊임없이 질문하자는 것.

아이들이 뭘 보고 듣고 만지면 좋을까? 앱을 갖고 노는 동안 사고력을 기를 순 없을까? 아이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 순 없을까? 책, 장난감, 박물관이 못 하는 것을 앱으로 실현할 수 없을까?

아이가 직접 실험하며 하나씩 배우도록 설계했습니다.

앱 하나하나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담겨있습니다. 아이가 직접 실험하는 동안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얻는 구조로 모든 앱을 설계했죠.

〈사람의 몸〉을 예로 들게요. ‘음식을 먹으면 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직접 사과를 먹여 소화되는 과정을 지켜봅니다.

그리곤 다른 음식 아이콘들을 보며 ‘그럼, 우유를 먹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으로 이어갈 수 있어요.

앱 안에 아이들의 실험실을 만들어 둔 셈이군요.
실험하고, 예상치 못한 결과를 얻고, 다시 시도해 보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의도와 다른 결과를 만나는 과정에서 감정이 상하거나 주눅 들어선 안 돼요.

그래서 아이가 앱을 갖고 노는 동안 이기고 지거나, 맞고 틀리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주의했어요.

전 세계 아이들 손끝에서 별별 동물이 다 만들어지고 있죠.

〈뒤죽박죽 동물 정원〉이 좋은 예가 되겠네요. 아이가 앱 안에 상상 속의 동물을 만들 때, 기준이나 목표가 따로 없습니다.

대신 어른들은 상상도 못 할 아이들만의 이야기가 생겨나죠. 플레이 테스트를 할 때 아이들이 만든 기상천외한 동물에 담긴 사연을 듣곤 하는데요. 그 엉뚱함과 순수함에 늘 감동해요.

홈페이지 직원 소개란에 각자의 어린 시절 사진이 올라가 있습니다.
저희 스스로 ‘어린이였던’ 사람들이라 규정해요. 조금이라도 순수함을 유지하려고요. 매일매일 모험이 펼쳐지는 것 같았던 그 시절, 우리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기억하려고 노력합니다.

타이니밥의 홈페이지에는 직원들의 어린 시절 사진이 올라가 있어요.

함께 일할 사람을 뽑을 때도 어린 시절 이야기를 많이 물어봐요. 좋아했던 동화책은 무엇인지, 즐기던 게임은 뭔지. 특출난 기술을 가진 사람보다 그런 추억이 풍부한 사람이 저희와 잘 맞더라고요.

9년간 총 17개의 앱을 출시했습니다. 그동안 변화한 것도 있고, 지켜낸 것도 있겠네요.
시작부터 타이니밥의 분명한 청사진을 그려 뒀어요. 그대로 차근차근 개발해 온 터라 꾸준히 지켜낸 것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앱들의 초기 스케치를 살펴봤는데요. 실제 출시된 모습과 꽤 흡사해 놀랄 정도였어요.

모든 앱은 40개 이상의 언어를 지원해요. 어느 나라의 어떤 어린이도 소외되어선 안 되니까요. 오래 걸리더라도 반드시 국가별 언어 검수를 제대로 마칩니다.

광고나 앱 내 구입이 없는 것도 철칙이에요. 당장의 이익을 생각하면, 쉬운 길을 두고 돌아가는 것 같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아이가 더 보고 싶어 하고, 더 만지고 싶어 하는 콘텐츠를 담보로 부모들이 계속 돈을 쓰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렇게 꾸준히 부모들과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신뢰를 바탕으로 앱도 이름난 동화책이나 과학교구만큼 믿고 구매하는 교육 콘텐츠로 자리 잡을 거라 믿어요.

앱 하나가 작은 우주 하나입니다. 그 우주를 만드는 데 많은 이의 노력이 필요해요. 앱 아이콘만 봐도 함께 만든 동료들의 얼굴이 떠올라요.

개발하며 특히 기억에 남는 앱이 있나요?
세계 곳곳에서 후기를 전해 오는데, 그럼 더 기억에 남아요. 〈사람의 몸〉을 알고 난 후,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아이도 있었어요. 소극적이었던 학생이 〈저예요〉를 통해 자신 있게 발표하기 시작했다던 사례도 있었죠.

제 아이들도 마찬가지예요. 퇴근하고 돌아오면 둘째 아들이 〈로봇 공장〉으로 만든 로봇을 소개해 주는데요. 100개 넘는 로봇들은 저마다 다른 사연이 있죠.

그럴 땐 개발자로서 뿌듯함과 부모로서 책임감이 동시에 생겨요. 아이가 이렇게나 푹 빠져드는 앱인데, 앞으로 더 완벽하게 만들겠노라 다짐하죠.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타이니밥의 앱들은 학교 수업에도 많이 활용됩니다. 교실에서만 200만 번 넘게 다운로드됐죠. 이렇게 학교 수업에 도움을 줄 방법을 더 찾고 있어요. 집에서든 교실에서든 아이들이 무언갈 즐겁게 배웠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