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지

추억, 색을 입다

어느 노부부가 들려주는 그때 그 시절 이야기.

Colorize - Color to Old Photos

Black and White Color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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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추억이라는 게, 변질되고 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류는 온갖 기술을 동원해 추억을 보존해 왔고, 그 방법 중 하나가 ‘사진’이었죠.

흐릿한 흑백 사진에서 시작해, 알록달록한 컬러 사진을 거쳐, 총천연색의 디지털 사진에 이르기까지. 사진 기술은 그야말로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저마다의 특색을 뽐내는 사진 앱들이 앞다투어 출시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생생하게 추억을 기록할 수 있게 되었죠.

그런데 여기, 과거로 눈길을 돌린 앱이 있습니다. 바로 인공 지능을 활용해 흑백 사진을 컬러 사진으로 복원해 주는 〈Colorize by Photomyne〉입니다.

붉은 원을 3초 동안 눌러 직접 사진을 찍거나, ‘Upload’를 눌러 기기에 있는 사진을 불러오면 색이 자동으로 더해집니다.

과거를 흑백으로 기억하는 세대에겐, 컬러 사진이 주는 울림이 더욱 클 수밖에 없습니다. 드높고 푸르른 하늘. 따뜻한 온기가 감도는 얼굴. 발그레하게 상기된 볼. 그들이 실제 살았던 세계는 이렇듯 오색찬란했으니까요.

색을 빼앗긴 세계에 색을 되찾아주기 위해, App Store 에디터는 〈Colorize by Photomyne〉을 들고 서울에 사는 한 노부부를 찾았습니다. 부부의 먼지 앉은 낡은 흑백 사진은 이내 색으로 곱게 물들었고, 그 속에 잠들어 있던 크고 작은 추억들이 방울방울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1952년

김종귀: 나 총각 때 사진이야. 당신을 만나기 전, 그러니까 6.25 전쟁 때 부산에 있는 육군 병원에서 수술실 조수로 군 복무할 때지. 그래서 전쟁 일선에는 안 나갔어. 총을 손에 쥐어 본 적도 없지. 운이 정말 좋았던 거야. 일선에 나간 친구들은 거의 다 죽었거든.

병원에서 군인들한테 한글 가르치는 일도 했어. 그때는 글을 읽지 못하는 군인이 많았거든. 다들 애를 써서 배웠어. 왜냐하면 집에서 편지가 와도 못 읽었으니까. 한글을 배우고 편지를 읽을 수 있게 되어서 얼마나 고마워하던지…. 면회 오는 가족들이 내게 떡이며 엿이며 해다가 주고 그랬어.

1956년

정운례: 내 처녀 시절 사진이네. 결혼하기 전에 당신이랑 만나서 찍은. 그때 난 화장도, 파마도 잘 안 했어. 결혼하는 날 처음 파마를 했지. 사실 시집도 안 가려 했어. 수녀가 되어 동정을 지키며 혼자 살고 싶었거든. 그런데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나 때문에 두 다리 뻗고 못 잔다는 소릴 듣고 한 달만에 간 거야. 당신이 마음에 들고 안 들고도 없었지, 뭐. 그렇게 얼떨결에 한 거야. (웃음)

1956년

김종귀: 당신 이날 참 예뻤지. 내가 스물여덟이고, 당신이 스물넷이었나?

정운례: 응. 근데 스물넷도 늦은 거였어. 그땐 열세 살, 열일곱 살에도 결혼하고 그랬으니까.

웨딩드레스가 없어서 그냥 하얀 화관과 면사포를 쓰고, 하얀 치마에 하얀 저고리를 입고, 하얀 버선에 하얀 고무신을 신었지. 들러리들도 모두 하얗게 입었고. 집에서 다 맞춘 거야. 우리 어머니가 바느질을 아주 예쁘게 잘하셨거든. 동네 사람들 혼수 바느질을 다 도맡아서 하셨을 정도로.

그때만 해도 옛날이라, 다 가마 타고 댕겼어. 그런데 우린 식을 올리고 친정으로 가는 길에 가마 대신 트럭을 타고 갔지. 그때가 봄이라 겨우내 얼었던 논두렁이 녹은 상태였는데, 글쎄 거기에 트럭이 박히는 바람에 내가 확 고꾸라졌잖아. 드레스 입고 화관 쓴 채로 말이야.

1961년

정운례: 뭐가 이렇게 젊어? 언제 찍은 거야?

김종귀: 내가 국민학교 선생 노릇 할 때 찍었지. 국어며 산수며 모든 과목을 다 가르쳤어. 그땐 항상 이렇게 정복을 입었어. 지금 저 안경은 없지만, 넥타이는 지금도 집에 있을걸? 신기하네, 실제 색이랑 똑같은 게….

나는 어릴 적부터 선생이 되고 싶었어. 나는 부모가 없어서 계모 집에 얹혀살아야 했는데, 계모는 농사지으라고 학교에 못 가게 하셨지. 그런데 공부가 너무 하고 싶은 거야. 그래서 내가 벌어서 했어. 왜정 시대에는 사립 국민학교가 4년제고 공립 국민학교가 6년제였는데, 나는 사립 국민학교를 고학해서 다녔지. 고학이 뭐냐면, ‘괴로울 고’에 ‘배울 학’. 학비를 벌기 위해 별걸 다 했거든. 여름에는 참외 장사하고 겨울에는 엿 장사하고…. 많이 힘들었지. 그래도 국민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전교 1, 2등을 놓치지 않았어.

1971년

정운례: 아휴, 정말 옛날 사진이네. 아마 큰 애가 중학교 다닐 때지? 막내가 일곱 살이었고. 아기 때 업고 다니면 잘생겼다고 칭찬 많이 받았어. 옷도 내가 다 만들어 입히고 그랬어. 그땐 다 그랬으니까.

그리고 이건, 집에서 키우던 개가 사나워서 개 조심하라고 쓴 거였어.